사람과 자연을 회복하는 중보 기도

#신앙 #삶

그리스도인의 중대한 사역,중보 기도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디모데전서 2:1)


 ​​​헬무트 틸리케의 하나님 마음을 듣다 ⑥

​ 세상에는 설교로 다가갈 수 없는 대상이 무수히 많다. 우리가 그들을 모조리 불러 물리적 반경 내로 다 데려올 수는 없다. 우리를 구원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음을 우리는 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일상에 파묻혀 영원을 간과한 채 나락으로 치닫고 있다. 그들의 결말을 아는데, 우리가 그들에게 일일이 찾아가 복음을 전할 수가 없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
문제가 산적한 나라를 '기도' 로 대신 짊어지는 사람이
몇 명이라도 있다면, 그 나라는 소망이 있다.
의인의 중보 기도가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린다.

 

사람과 자연을 회복하는 중보 기도

  우리는 이런 영적 부담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무슨 일로 부르시는지 여쭈어야 한다. 그 일은 바로 ‘중보 기도’다. 이는 단순히 어떤 사람들의 문제를 기도 제목으로 삼는 것을 넘어, 그들이 할 수 없는 기도를 대신 하는 것이다. 신자와 비신자 모두를 대리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위해, 세상을 위해 어떤 내용으로 중보 기도를 하느냐는 논쟁보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 중보 기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다.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이 열 명만 있었어도 성읍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창 18:16 이하). 악이 판치던 그곳에서 전도할 기회가 그들에게 없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의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중보 기도를 했다면, 그걸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문제가 산적한 나라를 기도로 대신 짊어지는 사람이 다만 몇 명이라도 있다면, 그 나라는 소망이 있다.


  술에 취하고 세상에 취한 사람들이 비틀거리는 곳에서 당신은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당신이 그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해야 한다. 그들을 대신해 하나님께 두 팔을 들고 자비와 은혜를 구해야 한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조차 교회가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는다. 자신은 교회에 가지 않지만, 그리스도인의 덕으로라도 재앙에서 보호받고 싶은 것이다. 이는 비신자들도 그리스도인을 하나님과 가까운 존재로 인식한다는 증거다.

중보 기도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신음까지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리는 '대표 행위'다. 하나님 나라가
온 세상에 임하길 간구하는 것이 웅리의 중대한 사역이다. 

 

  한편 단조로운 신앙생활로 생명력을 잃은 신자들, 매일의 벅찬 임무로 지친 영적 군사들, 내면의 고립 속에서 시들어 가는 사역자들이 호소한다. “마음이 짓눌리고 숨이 막힙니다. 저의 목소리는 잦아들어 거의 끊겼습니다. 직접 기도하기 어려우니,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라도 제가 하나님께 드려지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해야 한다.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며 일인칭 복수 대명사에 그들을 포함시켜서 그들도 기도의 주체가 되게 해야 한다. 다만 그들의 입장에서 기도하되, 그들의 결단까지 대신하려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는 말 못 하고 이성 없는 자연의 대변인이 되어 자연에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자연도 구속되어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성될 때 거기에 흡수되도록 말이다. “나라가 임하시오며…”(마 6:10)라는 예수님의 기도 속에는 피조 세계가 하나님의 통치를 기다리고 있다는 로마서 8장의 진리가 포함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중보 기도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신음까지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리는 ‘대표 행위’가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보 기도를 통해 일하신다. 고립되거나 말할 수 없는 사람도 중보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할 일을 얻게 된다. 하나님은 중보 기도를 들으시고,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이끄신다. 혼란스러운 세상이 평안을 찾게 하신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대신 하는 기도, 모든 피조물을 대표해서 하는 기도는 우리의 사역이요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