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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원하는 걸 말해 봐. 삼촌이 들어주러 왔어”
‘도위시’ 채널 운영자 이도열 전도사 | 2025년 06월호
  • “삼촌이 원하는 거 하나 들어주려고 왔어”, “마음대로 원하는 걸 골라 봐”

     쭈뼛쭈뼛하더니 조심스레 물건을 하나 둘 집어 드는 아이의 얼굴에 어리둥절함과 설렘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흐뭇한 미소로 서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이도열 전도사. 그는 ‘도위시’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소아암, 난치병으로 투병 중인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키다리 삼촌입니다. 

     

    글│한경진 기자 · 사진│정화영 기자, 이도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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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살 도열이 이야기

     

    9살, 초등학교 2학년 되던 해. 평소처럼 학교에 가려고 일어났던 꼬마 도열이는 왼쪽 귀가 먹먹한 것을 느꼈습니다. ‘수영할 때 들어간 물이 안 빠졌나?’ 살을 뺀다고 수영장에 다녔던 터라,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소리가 안 들리고 귀가 답답해지자, 도열이는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 가서 물을 콸콸 틀고 수도꼭지에 귀를 갖다 댔습니다. 넣은 물이 빠지면서 수영할 때 들어갔던 물도 같이 빠질 거란 (나름) 합리적인 처방이었습니다. 그렇게 응급조치를 하고는 방과 후 병원에 가 보니 고막에 물이 차는 증상인 ‘중이염’이라고 했습니다. 그럴만했습니다. 귀에 물을 그렇게 넣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몇 달이 지나도 먹먹한 증상이 나아지질 않고, 이상하게 왼쪽 눈이 점점 튀어나오더니 급기야는 감기지도 않았습니다. 잠을 잘 때면 눈이 감기도록 밴드를 붙이고 안대를 해야만 했습니다. 바로 의사 선생님이 써 주신 소견서를 들고 큰 대학병원으로 갔더니, 긴 막대기 같은 카메라로 귀를 살펴보시던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도열이 얼굴에 뭐가 있어요.” 검사 결과, 그 ‘뭐’는 7.5cm 크기의 암세포였습니다. 어른 주먹 크기의 암 덩어리가 얼굴 왼쪽에 박혀 있고, 하필 뇌 근처에 자리 잡고 있어서 수술도 불가능한 상황.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항암 치료제가 효과 있기를 기대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약이라고는 감기에 걸리면 먹는 딸기맛 시럽이 전부인 꼬마에게, 난데없이 어른들도 힘든 항암치료의 고난이 시작됐습니다. 3-4주에 한 번씩, 도열이는 항암제 고통을 견디며 피를 수혈 받고, 부작용 방지 약을 일주일 동안 맞아야 했습니다. 항암제는 몸무게에 비례해 투여하기 때문에, 9살이지만 70kg 고도 비만이었던 도열이는 성인 남성에게나 가능한 양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고, 일주일간의 치료 후에는 2-3주 동안 녹초가 되어 누워 있어야만 했습니다.

     

     ​49차례의 항암제 치료, 25번의 방사선 치료, 3년 6개월의 투병 기간.

     ​10살 남짓의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도열이와 가족은 막연했던 그 고난의 터널을 기어이 통과했습니다. 기적적으로 항암제의 효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게 3년 6개월 후 드디어 받게 된 ‘치료 종결’ 판정. 그제야 돌아본 아득했던 시간들은 알고 보니 모두 간증거리였고, 그것은 지금도 투병 중인 또 다른 꼬마 도열이들에게 소망을 전할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채널 도위시(Dowish)’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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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view


    ‘도위시’ 채널을 통해서 희귀난치병 아이들을 만나시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성품이 착하다거나, 큰 뜻이 있어서 시작한 일은 절대 아니에요. 사람은 본인이 겪은 일에 시선이 간다고 하잖아요. 어린 시절의 저처럼 난치병이나 소아암으로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치료받는 동안 힘을 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다 시작하게 된 거죠. ‘도위시’는 제 이름 중 ‘도(Do)’, 거기에 희망을 뜻하는 ‘위시(Wish)’를 합친 이름이에요. 아이들이 희망을 얻는 일에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뜻으로 지었죠.

     

    이 일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을까요?

    암은 완치가 없어요. 항암치료가 잘 되어 ‘치료 종결’ 상태가 되어도 정기적으로 추적검사를 해야 하죠. 그래서 어린이병동에 정기적으로 다녔는데, 갈 때마다 보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 무언가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어머니와 함께 고민하다가, ‘떡 나눔’을 시작했어요. 첨가물이 없고 깨끗해 보이는 흰 가래떡을 침대마다 나누면서 “어머니, 저도 여기서 치료받았는데 아이도 나을 수 있을 거예요. 저 보세요. 건강하잖아요” 하고 말씀드렸죠. 그러면 어머님들이 제 손을 잡고 막 우셨어요.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마워, 내 아이도 너처럼 나을 수 있겠지?” 하시면서요. 그때 느꼈어요. ‘이 아이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아이가 걷는 투병의 길에서 내가 건강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분들에게 힘이 되는구나’ 하고요. 그런데요.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저도 대학생이 되니 은혜에 조금씩 무뎌지더라고요. 저는 이제 건강한데, 아픈 아이들을 보는 게 썩 마음이 편한 일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중에 갑자기 코로나 사태가 터져서, 병실에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거예요. 

     

    앗, 뭔가 응답처럼 느껴질 법한 상황이네요. 

    맞아요. ‘이제 그만 하라고 하시는구나’ 싶었죠. 그러고는 대학생활에 전념했는데, 얼마 후 우연처럼 한 아이의 소식을 듣게 됐어요. 어머니 지인 분이 과외 선생님이신데, 그분께 수업을 받는 한 여고생이 어릴 때 앓던 백혈병이 재발해서 수업을 그만 둬야 했대요. 그래서 선생님께서 아이를 위로하기 위해서 제 이야기를 하셨대요. “내가 아는 애도 암이었다가 나아서 병원에 가래떡도 돌리고 했다더라. 너도 나을 수 있어”라고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놀라면서, 자기가 어릴 때 가래떡을 받았었다지 뭐예요. 그 얘기를 전해 듣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나 뭐하고 있지? 왜 은혜를 다 잊고 내 살 길을 찾고 있었지?’ 그때 다짐을 했어요. 다시 아이들을 위해서 살겠다고요. 그래서 다시 떡 나눔을 하려고 했지만, 코로나의 여파가 사그라지지 않아서 방법을 찾던 중에 ‘유튜브’가 떠올랐어요. 제가 투병할 때 한 단체에서 소원을 들어주시겠다고 해서 ‘무선 조정 비행기’를 말씀드렸더니, 비행기 선물과 함께 실제 경비행기를 태워주신 적이 있거든요. 투병생활 중에 정말 손에 꼽히는 행복한 날이었죠. 그때 생각이 나서, 그 일을 하기로 마음먹고 도위시 채널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하지만 소원을 들어주는 일은 마음만으로는 참 어렵잖아요. 재정도 많이 필요하고요.

    막상 시작했는데, 아이들 소원이 제 생각보다 스케일이 크더라고요. 지금까지 아이패드만 20개 가까이 구입한 것 같아요.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는 물론이고요. 하지만 저는 가진 게 없으니 어쩌겠어요. 솔직히 기도할 수밖에요. 제가 투병할 때, 알지도 못하는 한 장로님께서 기독신문에서 저에 대한 기사를 보시고는 3년 6개월 동안 치료비를 전액 후원해 주셨어요. 나중에 종결 판정이 난 후에 그분이 운영하시는 회사로 찾아갔는데, 그분은 나오시지도 않고 비서 분이 말씀을 전해 주셨어요.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한 건데 왜 저를 찾아오십니까? 하나님께만 감사하세요”라고요. 대단한 신앙이라고 느꼈죠. 문득 그때 생각이 떠올라서, 이런 기도가 나오더라고요. “그때 보내주셨던 부자 장로님 같은 분을 또 만나게 해 주세요.”

     

    정말 그런 분이 나타나셨나요?

    이상하게, 기도할수록 자꾸 딴생각이 나는 거예요.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정말 안 해본 것 없이 악착같이 일해서 저금한 돈, 천만 원이 생각나지 뭐예요. ‘너 돈 있잖니?’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죠. 몇 번을 다시 기도해도 마찬가지였어요. 결국 한동안 마음의 씨름을 하다가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전 재산을 사역의 마중물로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대신 다 쓰고 나면 다음은 하나님께서 채워주세요”라고 기도하고는 모아놓은 통장을 깨버렸죠. 그랬는데, 후에 놀라운 일이 있었어요. 결혼을 준비하면서 전셋집의 보증금이 필요한데, 아무리 모으고 모아도 딱 천만 원이 부족한 거예요. 그때 슬며시 ‘만약 도위시를 안 했으면…’ 하는 인간적인 생각이 드는 거 있죠. 그래서 얼른 다시 정신을 차렸죠. 그 무렵 어느 교회의 간증 자리에 가게 됐는데, 간증 후에 담임 목사님께서 “오늘은 전도사님의 소원을 저희가 이뤄드리고 싶어요” 하시더니 “소원이 뭔지 몰라서 내일 계좌로 돈을 입금해드릴 테니, 아이들 말고 전도사님의 소원에만 사용해 주세요” 하셨어요. 그런데 다음 날, 딱 천만 원이 입금되어 있는 거예요.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천백만 원이라면 은혜가 덜했을지 몰라요. 정말 제가 헌신한 만큼, 그리고 딱 필요한 만큼 정확하게 주시다니요. 그때 ‘하나님께서 도위시 사역을 응원하시는구나, 나를 정말 세밀하게 보고 계시구나’ 하는 걸 확실하게 느꼈어요. 

     

    역시 드라마틱한 하나님이시네요. 그런데 전도사님은 대체 왜 이렇게 사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니까요. 솔직히 내려놓고 싶을 때도 많았고,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싶을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한번은 아내가 “캘린더 펴 봐” 하더니, 빼곡하게 적힌 아이들과의 일정을 보면서 말했어요.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이들이 너를 기다리는데, 그것만으로도 계속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아?” 하고요. 그 말이 맞아요. 제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계속 보내주시는데, 제가 멈춰서는 안 되죠. 사실, 처음에는 이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 이야기를 하는 게 힘들었어요. 저도 어릴 때 “하나님께서 계획이 있으실 거야, 기도할게” 하는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면서 마음이 힘들었거든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말로만 위로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하나님 이야기를 하기 조심스러웠는데, 아이들을 만난 지 1년 정도 되던 어느 날, 큐티를 하다가 ‘이 사역에 하나님의 이름이 빠지면 무슨 의미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엄청난 용기를 내어, 아이를 만난 후에 어머님께 말씀드렸어요. “사실 저는 전도사인데요. 아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가도 될까요?”라고요. 그랬더니 흔쾌히 허락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기도할 때 마구 눈물을 흘리셨어요. 너무 간절하니 어떤 기도라도 필요하셨던 거예요. 그때 이 일에 대한 이유가 더 확실해졌어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역이고, 이 일 끝에 하나님의 이름이 남도록 해야겠다고요. 그게 제가 이렇게 사는 이유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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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박성민  2025-08-02
정말 뜻깊은 사역에 결과 같은 인터뷰 이고 현실적인 도움이 되는 사역에 인터뷰 인것 같습니다 일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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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 새벽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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