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과학계에서 그는 명망 있는 연구자이다. DNA의 한 부분을 자르고, 거기에 특정 유전자를 더하거나 빼는 방식으로 선천성 희귀질환인 ‘샤르코-마리-투스병’, ‘레버 선청성 흑암시’의 치료제를 개발해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화려한 이력을 뒤로 한 채 “하나님의 사람들을 키워내겠다”며 모교에 돌아온 그를 학생들은 ‘호구’, ‘호구와트’라 불렀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그의 방 책상에도 역시 ‘호구 리처드’라는 명패가 놓여 있다. 영문 이름이 ‘리처드’인가? 했지만, 알고 보니 ‘호구 이(리)정민 처장님께 드립니다’의 약자였다. 학교의 기획처장이 된 그에게 학생들이 준 선물이라 한다. 그는 대체 어떤 삶을 사는 걸까? 그의 강의에 집중해 보자.
글│한경진 기자 · 사진│정화영 기자
<1강> 우리의 몸값
여러분, 지금부터 여러분의 몸값을 알려 드릴게요. 우주에 떠 있는 별의 숫자는 몇 개일까요? 현재까지 밝혀낸 숫자는 7×1022 정도예요. 70,000,000,000,000,000,000,000개. 상상이 안 되죠. 그런데요. 여러분의 몸속에 이 우주보다 놀라운 게 있다는 걸 아시나요?
우리 몸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어요. 개수는 약 1×1014개. 약 10,000,000,000,000,000,000,000개 정도죠. 각 세포들 안에는 유전 정보가 담겨 있는 ‘DNA’라는 두 가닥으로 된 사슬이 있는데요. 세포 하나마다 약 60억 쌍의 DNA가 들어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몸에 60억 쌍의 DNA가 들어있는 1×1014개의 세포가 있는 거예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려 드릴게요.
저는 실험을 할 때 필요한 DNA를 인공적으로 합성해서 만들어요. 세포 하나에는 60억 쌍의 DNA가 있다고 했지만, 실험을 할 때는 보통 길이가 20~30개 정도 되는 DNA를 합성해서 만들죠. 이 합성 작업은 전문 회사에 맡기는데, 여러 회사가 있지만 그중 가장 저렴한 회사에 맡긴다면 얼마쯤 할까요? DNA 60억 쌍을 만들 수 있는 ‘염기’라는 조각의 단가가 450원이에요. 그러면, 세포 하나의 가격이 나오죠? 단순하게 450원×(6×109) 하면, 세포 하나에 2조 7천억 정도인 거예요. 그런데 우리 몸에 세포가 몇 개 있다고 했죠? 1×1014개.
그러면 여러분 몸 전체 만큼의 DNA를 만드는 데 얼마가 들까요? 270,000,000,000,000,000,000,000,000원. 일, 십, 백, 천, 만, 억, 조, 경, 해, 자…. ‘270자 원’이에요. 와우!
더 놀라운 얘기를 해 줄까요? 여러분의 몸은 하루에 매일 330억 개의 세포를 새로 만들어 내요. 그러면 하루에 얼마나 버는 건가요? 2조 7천 억 곱하기 330억. 그게 실험실에서 보는 여러분의 몸값이에요. 어떤가요? 하나님께서 ‘한 사람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당연하죠. 270자 원 어치를 만드셨으니까요. 거기다 매일 330억 개의 세포가 다시 만들어지니까요. 여러분이 그런 존재인 거예요.
<2강> 순종이 모국어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12월, 그러니까 6학년의 마지막 주까지 주일학교 학생이었고, 아직 중학교 입학도 하기 전인 다음 해 1월부터 주일학교 교사가 됐어요. 믿음이 좋았냐고요? 전혀요. 아버지가 작은 시골 교회의 목사님이셨고, 시골 교회에는 교사가 없으니 뭣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했던 거예요. 아버지는 정말 겸손하게 교회와 성도를 섬기는 분이셨어요. 설교와 행동이 일치하시니 어떤 불평도, 갈등도 없이 잠자코 아버지를 따라 교회 일을 도울 수밖에요. 교회에 차가 없어서 예배를 마치면 친구들을 자전거에 태워 30~40분 거리의 집까지 데려다 주고 혼자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시골길을 달려와야 했고, 낡은 교회에 어디 문제라도 생기면 고쳐야 했고, 동네 어른이 바윗돌을 옮겨 달라고 하시면 낑낑거리며 들어다가 집안까지 옮겨주고 하는 게 제 청소년 시절의 일상이었죠.
돌아보면 그게 저의 가장 빛나는 시절이었어요. 자전거를 타고 공포에 떨며 캄캄한 길을 달리고 나면 자전거 핸들을 쥔 손에 반딧불이가 다닥다닥 붙어 있던 추억, 집 앞까지만 놓아 달라던 바윗돌을 굳이 집안에 원하시는 곳까지 가져다 드렸더니 교회에 반감이 크셨던 그 집의 어른이 두고두고 저를 칭찬하며 교회가 괜찮은 곳이라고 말해 주셨던 추억까지. 사실, 그 시절 시골에는 농사가 끝나면 빈 창고를 아지트 삼아 나쁜 일을 하던 중고등학생이 많았어요. 하지만 저는 자전거 운행도 해야 하고, 돌도 나르고, 교회 난로도 떼고, 지붕도 고치느라 바빴을 뿐이었죠.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됐어요. ‘아,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훈련시키신 거구나. 뭣도 모르고 그냥 열심히 했는데, 성령의 열매인 ‘충성’이 내 DNA가 되게 하신 거구나’ 하고요. 사람들은 ‘능력’ 갖기를 바라요. 1등! 명문대! 부자! 그것이 열매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성령의 열매에 ‘능력’은 없죠.
지금도 여전히 저는 학교에서, 교회에서, 연구실에서 시간을 쪼개가며 쉼 없이 섬기고 있어요. 누군가는 저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이게 ‘모국어’예요. 모국어를 쓰는 사람에게 “왜 이럴 때는 ‘이’를 쓰고, 이럴 때는 ‘가’를 쓰나요?” 하고 물어보면 잘 대답을 못해요. 왜냐면, 그냥 자연스럽고 당연해서 쓰는 거니까요. 저에게 “왜 그렇게 사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어요. “이게 편한데?”, “나한테는 이게 당연한데?”라고요.
<3강> 말씀의 거울 앞에 선 호구로 살자!
크리스천은 맡겨진 일이 무엇이든 그 일을 통해서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주어진 도구는 ‘생명과학’인 만큼 희귀 난치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치료제를 만들되,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는 말씀처럼 가난한 사람도 비싼 치료제의 혜택을 받도록 방법을 찾는 것이 제 이웃 사랑의 방식이에요. 또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세상에 보여주려 하죠. 연구를 하다 보면 갈등의 순간이 와요. 연구실은 대학원생을 ‘노예’라 부를 만큼 위계 질서가 강하고, 연구 과정이나 비용 등에서도 법의 테두리를 슬쩍 피해 갈 수 있는 유혹이 많거든요. 하지만 그런 것은 우리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 아니에요. 그래서 연구 과정과 결과에 늘 정직하게 임하고, 함께하는 학생들과 동료들, 학교 직원들과 만나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대하려고 노력해요. ‘예수 믿는 과학자는 이렇게 일하는구나’ 하도록이요. 그러면 사람들이 물어보겠죠. “그렇게 일하는 것이 노멀한 겁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그게 이상해 보이는데, 당신이 사는 나라에서는 그게 당연한 겁니까? 그 나라에 대해 알고 싶네요.”
그런 맥락에서 한동대 학생들과 시작한 것이 있어요. ‘호구 팀’이에요. 마태복음 5장 38-42절을 보니 예수님이 명령하신 삶이야말로 ‘호구의 삶’이더라고요. 그래서 해마다 ‘호구 팀’ 학생을 기수별로 모아서 호구의 삶을 나누고, 졸업해서 사회에 진출하면 ‘호구펀드’를 진행해요. 1년에 한 번, 부담 없이 5천 원씩 모으는 거죠. 지금껏 모은 돈으로 자립준비청년들을 돕고, 우간다 선교사님이 세우신 학교의 책걸상을 바꿔드렸어요. 호구펀드는 계속 이어질 예정이죠.
마지막으로 우리 청소년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어요. 세상은 우리를 계속 ‘거울’이 아닌 ‘쇼윈도’에 세워요. 그러고는 “너 몽클레어 없어?”, “옆집은 포르쉐 타는데 너희는 없네”, “너 구찌 있다고? 그런데 에르메스는 없잖아” 하면서 끊임없이 비교하죠. 하지만 크리스천은 사람들을 향하는 쇼윈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 앞에 서야 해요. 말씀 앞에서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고, 어긋난 방향성을 바로잡아 가야 하죠. 지금 세상은 화살이 과녁에서 벗어나면, “그래도 괜찮아” 하고 잘못 맞은 그곳을 쳐다보지 말라고 위로해요. 하지만 크리스천은 잘못 쏜 그 자국을 똑바로 바라보며 “하나님, 또 잘못 쏠지도 모르지만 다시 하겠습니다” 할 수 있어야 해요. 그렇게 말씀 앞에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줄 아는 여러분이 되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