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 끝에 닿아본 사람만이 지도를 그려낼 수 있듯, 아픔에 닿아본 사람만이 위로할 수 있는 아픔이 있다. 아픔의 끝자락까지 닿아본 그는, 그가 눈물을 머금고 걸어왔던 그 길로 이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누군가의 삶에 햇살이 들게 하는 노래를 부른다. 그가 겪어온 차디찬 겨울은 더 이상 아픔의 계절이 아닌, 누군가의 삶에 소망을 눈처럼 소복하게 쌓아줄 수 있는 기쁨이 되었다. 이름 모를 누군가를 편견 없이 마주할 줄 알고, 언제나 꾸밈없이 솔직하기를 노력하고, 이것저것 재고 따지기보다 담백하게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의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취재│엄예지 기자 · 사진│한치문 기자
“나를 왜 이렇게까지 사랑해 주시지?”
모태신앙이고 교회오빠일 것 같은 그가 교회를 처음 다니게 된 것은 그렇게 대단한 계기는 아니었다. 고등학생 시절 음악이 하고 싶었던 그는 주말 내내 아르바이트한 돈을 모아 연습실을 등록해서 다녔다. 그러던 중, 같은 연습실을 다니던 친구가 ‘교회오빠’로 불린다는 소문을 듣고 호기심에 어느 교회에 다니는지 물었다. 그 친구가 다니던 교회는 우연히도 그의 집 근처에 있었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교회에 첫발을 디뎠다.
교회에 처음 간 그에게 세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첫 번째는 ‘와, 나 빼고 다 여기 있었구나’였다. 연습실이 문을 열지 않는 일요일마다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은 교회에서 기타도 치고, 베이스도 치면서 음악을 하고 있었구나 하는 소외감이 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생각, ‘일요일에 여기 오면 나도 음악 할 수 있겠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CCM이 생각보다 좋은데?’. 그렇게 그는 좋아하는 음악 덕분에 교회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하지만 정착을 하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해준 가장 큰 도움은 새가족 담당 선생님이었다.
그는 아직도 그 선생님의 성함을 또렷이 기억한다. 선생님은 그를 자식처럼 예뻐해 주셨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시간이면 데리러 와서 밥을 사주시기도 하고, 집에 데려다주시기도 하고, 책을 선물하시기도 하고, 무엇보다 일이 생겨 교회에 못 간다고 말씀드리면, 다른 말보다 “너 되게 많이 힘들겠다, 외롭겠다”라고 공감하시며 눈물 흘려주시기도 했다. 그리고 전화로 기도를 해주곤 하셨다. 그 넘치는 사랑 때문에 ‘날 왜 이렇게 사랑해 주시지’라는 의구심과 동시에, ‘내가 크리스천이 된다면,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선생님의 조건 없는 사랑은 훗날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낯설지 않게 대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허락하시는 하나님”
그는 새가족 선생님의 권유로 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수련회에서 ‘기도 시간’이라는 것을 처음 접해본 그가 느낀 감정은 ‘무서움’이었다. 그는 정말 무서워서 수련회장에서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나름 언제 어떻게 도망을 갈지 철저하게 계획까지 세웠다. 진심으로. 하지만 둘째 날이 되었고, 결론적으로 그는 도망치지 못했다. 그런데 그게 너무 다행이었다.
저녁 집회 때, 한 선교사님이 오셔서 ‘하나님은 감당할 만큼의 시련만 주신다’는 주제의 설교를 하셨다. 설교를 듣고 그는 지나온 날들을 떠올렸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주유소부터 식당, 철거 현장 등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해야 했고, 내성적인 성격 탓인지 어려운 대인관계로 인해 큰 외로움을 견디던 순간들. 그는 기도가 하고 싶어져서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보았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 저 되게 힘든 것 같아요”라고 고백하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그것이 그가 하나님 아버지를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낸 후 눈을 떴을 때, 현실적으로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지만 한 가지, 그가 바라보는 시선이 변해있었다. 그의 삶에 있어 수치이자 부끄러움이던 순간들이 그가 노래할 가사가 되었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지금 누군가의 시린 계절을 함께 걸어주고 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그가 인생에서 찬양 사역을 시작하게 된 시점을 굳이 따지자면, 20대 초반 가을 즈음부터 3년 동안 길에서 노래하던 시간들이다. 시작은 음악이 너무 하고 싶었으나 하기 어려운 환경이어서 포기하기 직전, 자신을 어딘가에 남겨두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사역이나 선교라는 거창한 비전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길에서 노래도 부르고 찬양도 하던 그 선물 같은 순간들이 그를 찬양 사역의 자리로 이끌었다.
그는 그저 길에 있는 게 너무 좋았다. 노래하고 찬양하는 것도 좋았지만, 길에서 만난 갈 곳 잃은 분들과의 대화가 그에게는 잊히지 않는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그도, 상대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모습이나 세상에서 인정받을 만한 모습이 아닌, 꾸밈없이 한 사람으로서 대화했던 시간들이 그에게는 삶의 가장 큰 임팩트를 남긴 순간이 되었다.
길에서 노래하던 어느 날, 그는 먹을 걸 이것저것 사서 다리 밑에 사시는 분께 마음을 담아 선물 드렸다. 하지만 내일은 그 자리에 머물 수 없어 떠나야 했던 그분에게는 짐이 되기에 거절을 당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주려는 사랑을 주는 것이 온전한 사랑이 아닐 수 있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없던 자신의 무력함에 큰 슬픔을 안고, 더 좋은 사람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 돌아오리라 다짐하며 길에서 노래하던 자리를 떠나왔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자리를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위러브’라는 찬양팀과 함께하게 되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그가 위러브 찬양팀과 함께하게 된 것도, 위러브가 영향력 있는 찬양팀이 된 것도 그 시작은 아주 미약했다. 그와 함께 살던 형을 만나러 온 위러브의 박은총 대표를 우연히 마주하게 되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때마침 옆에 기타가 있어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의 노래를 들은 박은총 대표는 그의 노래와 삶을 궁금해 했고, 함께 찬양하며 많은 이들에게 나누기를 권했다. 그때까지 위러브는 거창한 목표를 가진 찬양팀이라기 보다 찬양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하지만 순수하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고, 서로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사람들이 모이니 그 영향력은 점점 커져서 지금의 ‘위러브’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시도한 수많은 도전은 청소년들에게도, 고착되어 있던 기존의 예배에도 선한 영향력을 끼쳤고, 새로운 도전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하나님 앞에 솔직하고, 지금에 충실한 사람”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인물은 베드로다. 지금에 가장 충실하고, 본능에 솔직한 사람이기 때문에. 홧김에 예수님을 잡으러 온 병사의 귀를 자른 모습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모습도, 그리고 후에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자 부인할 때는 언제고 오히려 예수님께 “주님이 아시잖아요”라고 반문하는 모습까지. 그런 베드로의 모습들이 그에겐 정말 인간적인, 솔직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정말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 그래서 그는 신앙의 침체기가 올 때 베드로처럼 하나님 앞에 더욱 솔직해지려 노력한다. 사랑받기 위해 포장된 모습이 아닌 모나고 솔직한 모습 그 자체로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계절’ 같은 분이셨다. 어느 순간엔 가슴까지 시린 추위를 겪기도 하고, 어느 순간엔 시린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의 더위를 겪기도 하는. 하지만 처해있는 계절이 시리든 시원하든 충실하게 시려 하고 충실하게 시원해하며, 그 순간에 가장 충실하게 아파하고 가장 충실하게 행복을 누리며 어느 계절이든 그 순간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추억하고 느끼는 것이 그에겐 소중했다.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
그는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더 크게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직업인으로서의 성공을 목표로 하기보다 어떤 형태로든 그가 겪었던 시린 계절을 보내는 이들에게 자신이 받은 것보다 더 크게 흘려보내기를 바라고, 허울뿐인 도움이 아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를 소망했다. 또한 무력함의 슬픔과 다짐을 안고 떠나온 그 길로 다시 돌아가 그들이 기쁨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