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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운동도, 영화도 나는 꺾이지 않는다!
김종민 감독 | 2023년 12월호
  • “영화감독이고, 인천 대표로 활약하고 있는 운동선수이기도 하고, 인문학/인권 강사이기도 하고, 심리상담가, 그리고 글을 쓰는 작가…. 뭐가 많네요. 그냥 크리스천입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것도 저것도 하는 일이 많지만 결국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 크리스천이다. 3살 때 혼자 교회의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다 다쳐 ‘뇌병변 편마비 3급 지체장애인’이 되었지만, 그에게서 보이는 것은 장애가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한 사람이 보일 뿐이다. 

     

    취재│한경진 기자 · 사진│한치문 기자, 김종민​ 

     

     

    불리는 직업이 참 많으시네요. 우선 운동선수 김종민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요? 언제부터 운동을 시작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리틀 야구단에 무작정 찾아간 적이 있었어요. 야구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장애자는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축구선수로 꿈을 바꿨죠. 왼쪽 편마비가 있지만 걷는 건 지장이 없었거든요. 어느 날, 제가 다니던 학교와 다른 학교가 축구대회를 했어요. 어떤 친구가 저에게 패스를 해 줘서 골키퍼와 1대 1 찬스가 되었죠. 왼발로 바로 차면 골키퍼가 막을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왼쪽 편마비인 저는 왼발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오른발로 차려다가 슈팅 기회를 놓치고 말았죠. 골키퍼에게 공도 빼앗겼고요. 친구들에게 욕을 얼마나 먹었는지 몰라요. 심지어 애들이 ‘애자’라고 놀리기도 했어요. 그 후에 축구는 안 된다는 걸 알고 포기했어요. 그게 6학년 때 일이죠.

     

    어떻게 보면 ‘좌절’의 경험인데, 그래도 스포츠를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셔서 지금까지 오신 거네요?

    포기할 생각은 안 했어요. 그때는 이루지 못했지만, 장애 재활을 위해 꾸준히 해오던 수영으로 장애인체육대회에 나가 2009년에 동메달을 땄고, 서른이 되었을 때 종목을 바꿔 창 던지기에 도전했죠. 성적이 좋았어요. 8년 준비해서 동메달을 땄으니까요. 제 앞에 실력 좋은 두 사람이 있는데, 그 두 사람을 넘기 힘들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2017년 대회에서 제가 은메달을, 올해 장애인전국대회에서는 처음 금메달을 목에 걸었어요. 창을 던진 지 15년 만에 이룬 일이죠.

     

    정말 포기하지 않으시는군요! 그래도 체력적으로도 그렇고, 몸의 한계를 만날 때가 있으실 것 같아요. 

    한계가 분명히 있죠. 지금 함께 운동하는 친구들이 거의 20살, 21살이에요. 모두 정신장애인이라 신체 피지컬은 엄청 좋아요. 그런데도 친구들에게 지기 싫어서 승부욕으로 부딪치곤 하는데, 그러다 보면 부상이 따라오더라고요. 그래서 현실을 인정하고 너무 욕심을 부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승부욕이 넘치면 은혜가 안 되더라고요. 요즘에는 최대한 운동하는 공간을 교회처럼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훈련하다 보면 훈련 도구가 부족할 때가 있는데, 제 기량이나 운동 루틴을 생각하면 그 도구를 써야 하지만, “너희 먼저 해”, “나는 내일 하면 되지” 하고 그냥 양보하는 거죠. 물론 운동선수는 매일 하지 않으면 근육이 단련이 되지 않아서 이 부분이 딜레마이긴 한데요. 그렇다 보니 그 마음을 지키면서, 동시에 제 신체 상태가 대회 지장이 없도록 가장 지혜롭게 할 방법을 끊임없이 기도로 구하게 되는 것 같아요. ​ 

     

    지금 신체 나이로는 40대인데, 현역으로 운동하시기는 조금 벅찬 나이일 수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 생활을 계속 하시는 이유는 뭘까요?

    한 7~8년 동안 동메달만 따다 2017년에 처음 은메달을 땄어요. 늘 금메달을 따던 선수는 국가대표라 넘기 힘들었고, 은메달을 따던 선수도 소속 회사의 지원을 받으면서 운동하는 분이셔서 지원 없이 혼자 하는 저와 차이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그저 성실히 했는데 은메달을 따게 된 거예요.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숙소에 돌아오니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그 후로 계속 도전하고 싶어졌어요. 하다 보면 언젠가는 금메달 따는 날이 오겠지. 이 땅에서 못 따면 천국 가서 금메달을 주님이 주시겠지 하면서요. 만약 천국에서 주님을 만났는데, “너는 어떻게 살다 왔니?” 물어보시면,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하기는 싫어요. 훈련 시간이면 열심히 훈련하고, 영화 만들 때는 열심히 매달리고 하면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다 왔다고 말하고 싶어요. 매순간 제 선택이 주님의 뜻에 맞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주님이 주신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 왔다고요. 

     

    멋진 고백이네요. 영화감독으로서의 김종민의 꿈은 언제 시작됐을까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비디오 플레이어를 사 오셔서, 동네 비디오 대여점에서 <장군의 아들>이라는 영화를 대여해서 봤는데, 사나이들의 이야기가 너무 멋지고 재미있는 거예요. 이틀 동안 5번은 돌려 봤죠. 중고생 때는 영화관에서 네 글자 홍콩영화를 닥치는 대로 보고, 영화 대여점에서 2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한 1,500편은 봤던 것 같아요. 덕후처럼 영화를 하도 보니 직접 만들고 싶어지더군요. 그래서 한 신문사에서 하는 영화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상업영화 현장에 막내 스태프로 들어가게 됐어요. 그때는 장애인이 상업 영화 현장에서 일한 사례가 없었으니 거룩한 부담감이 있었어요. 제가 잘못하면 ‘역시 장애인을 고용하면 안 된다’, ‘장애인이 이런 일을 왜 하려고 그러지’ 하는 편견이 생길까 봐요. 그래서 현장에서 담배꽁초를 줍고, 식당 예약하고, 차량 통제하고 하는 허드렛일부터 정말 최선을 다해서 했어요. 

     

    그 시기를 거쳐 감독님이 되어 만드신 첫 영화는 어떤 영화인가요?

    <다리놓기>라는 영화예요. 청각장애인 여성과 시각장애인 남성이 지하철 플랫폼에서 부딪히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죠. 서로 다른 유형의 장애를 가진 남녀의 소통에 대해 풀었는데요. CGV 같은 큰 영화관에 걸리는 상업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쨌든 제가 쓴 이야기와 각본으로 연출을 해서 데뷔한 영화라 저에게는 참 의미가 있어요. 장애인들과 먹고 자고 함께 생활하면서 머릿속으로 쌓아뒀던,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이야기를 처음으로 데뷔작에 풀어냈으니까요. 

     

    감독님께 가장 의미 있는 영화가 따로 있을까요?

    모든 영화는 다 아쉬움이 있고 만족할 수는 없는데, 그래도 ‘토론토 스마트폰 국제영화제’에 개봉작으로 초청이 되고 뉴스데스크에도 나가게 해주고, 국무총리상도 받게 해 준 <하고 싶은 말>이라는 영화예요. 3~4달 동안 6시간 넘게 걸리는 길을 오가며 중증장애인 여섯 분과 함께 삶을 나누면서 만든 6분짜리 짧은 작품인데요. 내용은 여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는 ‘장애인의 선택권’에 대한 이슈를 담았어요. 우리는 흔히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를 너무 쉽게 이야기하고, 키오스크로 자유롭게 주문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영화의 주인공처럼 뇌병변 장애가 있거나 하는 사람들은 ‘아메리카노’ 라는 단어를 내뱉기도 힘들고 몸을 움직일 수도 없으니 단순한 주문 하나도 일생의 미션이 되어버려요. 뿐만 아니라 많은 중증 장애인들이 옷가게에 가면 탈의 시설도 없고, 매장에 휠체어로 들어가기도 힘들다 보니 마음대로 옷을 고르고 사기도 힘들어 해요. 그러니 누군가 옷을 하나 사다주면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입을 수밖에 없고요. 그러면 사주신 분의 취향이 자기의 취향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어떤 색,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든지 말이에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영화감독으로서는 더 큰 꿈도 있으실 것 같은데, 어떤 꿈을 꾸고 계시나요?

    한 3년 전까지만 해도 ‘칸 영화제’에 가서 레드카펫을 밟아보는 큰 꿈을 가진 적도 있어요. 하지만, 좀 더 현실적이 된 지금은 극장에 제 영화가 걸리는 것을 꿈꿔요. 토론토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을 때,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진 적이 있는데요. 어떤 분께서 “당신의 짧은 영화가 나의 마음을 터치하고, 나의 인식과 생각을 변하게 해줬다”고 하셨어요. 이게 제가 영화를 통해서 작게나마 바꾸고 싶은 인식들이에요. 하지만 독립영화로는 아무래도 많은 분들께 닿기 힘든 게 사실이에요. 조금 더 많은 분들이 보려면 더 접근성이 좋은 극장에서 상영해야 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장편영화도 만들고, 또 영화관에 걸리는 날도 오기를 꿈꾸고 있어요. 

     

    언젠가는 큰 영화관에서 감독님 작품을 보게 될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감독님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하나님은 너무도 따뜻한 분이시죠. 그런데 좀 밀당을 많이 하신달까? 영화를 하려면 자금이 많이 드는데요. 올해 진짜 열심히 준비한 장편영화가 지원금을 받는 최종 단계까지 갔다가 떨어지고 말았어요. 또 한 번은 제작사를 만났다가 막판에 어긋나고, 어떤 PD님과도 이야기가 오가다 엎어지기도 했어요. 그렇게 희망과 좌절이 왔다갔다 했는데요. 그래도 저는 스스로를 ‘코스모스’라고 생각해요. 늦게 피는 꽃이죠. 코스모스는 봄이 아니라 가을 늦게 피잖아요? 주님께서 계획하신 때가 국화나 장미 같은 봄이 아니라면, 10~11월인 가을일 수도 있는 거니 가장 좋은 길로 인도실 거라 믿는 거죠. 그렇게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걸어가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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