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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소중한 묵상을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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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다이어리에 묵상을 작성해보세요!
04:41
박상형
더욱 선명하고 풍성한 구원의 확신을 위하여(대상24장1-31)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삶, 과연 그것이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던 참된 자유일까? 현대 사회는 개인이 원하는 대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절대적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칭송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무제한의 자유를 누리는 현대인일수록 깊은 영적 무질서와 정체성의 혼란, 삶이 뿌리째 흔들리는 불안감을 호소한다. 내 마음대로 사는데 왜 영혼은 더 허기지고 불안한 것일까? 역대상 24장은 고대 이스라엘의 성전 제사장 직무를 정비하고 제비를 뽑아 24반열을 나눈 기록을 담고 있다. 자칫 건조한 족보와 직분 명단처럼 보이는 이 본문 안에는, "내 마음대로의 방종"과 "하나님의 규례" 사이에서 방황하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3가지 놀랍고도 역설적인 영적 반전이 숨어 있다. 인간의 한계 속에서도 굳건히 유지되는 거룩한 질서, 그리고 그 안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진짜 자유의 비밀을 찾아본다. 1. 인간의 실수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영원한 신실함 역대상 24장은 아론 가문에 덮쳤던 비극적이고 치명적인 사건을 들추며 시작된다. 아론의 두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제사하다가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한 사건이다(역대상 24:1-2). 하나님을 섬기는 최전선에 서야 할 제사장 가문의 장남과 차남이 거룩함을 훼손하고 즉사한 이 사건은,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와 제사장 가문의 존립을 흔들기에 충분한 대참사였다. 일반적인 인간의 사회라면 이러한 거대한 오점과 실패가 발생했을 때 직분을 몰수하거나 담당 지파를 전면 교체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에서는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나답과 아비후가 자식 없이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제사장 직분을 다른 지파로 옮기지 않으셨다. 아론의 남은 아들들인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통해 제사장의 거룩한 가업을 변함없이 이어가게 하셨다. 인간의 치명적인 과오와 무능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거룩한 직분이 철회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불변성" 때문이다. 인간의 한계나 무책임한 실수가 하나님의 선하신 약속을 폐기할 수 없다. 하나님은 한 번 내뱉으신 말씀은 번복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 여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때로 스스로의 연약함과 영적 실패에 좌절하여 "과연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자격이 있는가"라며 자책할 때가 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나의 구원과 사명은 나의 완벽함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로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의 영원한 신실함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2. 내 마음대로의 방종을 넘어 "규례"를 지키는 은혜로 "나는 이미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거룩한 백성이니, 이제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이러한 오만과 영적 방종이야말로 나답과 아비후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은혜를 방종의 기회로 착각하는 순간, 거룩함은 파괴되고 삶은 무질서의 늪으로 추락한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의 확신"과 "규례"의 관계에 대한 역설적인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구원의 확신은 단지 과거에 하나님께 선택받았다는 사실을 지식적으로 기억하는 것만으로 자동 완성되지 않는다. 도리어 "하나님의 규례대로 살아가는 삶의 실천"을 통해 구원의 확신은 비로소 우리 영혼 속에서 더욱 선명하고 풍성하게 증명된다. 규례를 따라 말씀의 울타리 안에 거할 때,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소유라는 사실이 삶으로 체화되는 것이다. 다윗 시대에 성소 제사장을 24반열로 나누며 제비를 뽑았던 사건(역대상 24:19)을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들이 제비를 뽑았던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 자체를 변경하거나 자기들 입맛에 맞추기 위함이 아니었다. 도리어 이미 세워진 "하나님의 규례를 온전히 지키기 위하여" 인간의 탐욕을 배제하고 제비를 뽑았던 것이다. (19) 이와 같은 계열로 그들은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조상 아론이 그들에게 세운 규례에 따라 섬겼습니다. 인간의 욕심대로 행하면 직분과 역할 나누기는 불만과 분열의 씨앗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규례를 중심에 두고 행할 때 불평은 사라지고 거룩한 질서와 평안이 찾아온다.
00:56
유홍열
가을이 깊어지면 나무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킨 채 저마다 다른 빛깔로 물들어 갑니다. 어떤 나무는 붉게 물들고, 어떤 나무는 노랗게 물들며, 어떤 나무는 소리 없이 마지막 잎을 내려놓습니다. 모양도 색깔도 다르지만 함께 가을을 이루어 갑니다. 믿음의 공동체도 그렇지 않을까요? 이에 제비 뽑아 피차에 차등이 없이 나누었으니… 차등이 없다는 말씀 이시대 우린 많이 배웟다고 또 경험이 많다고,, 차등을 두고 선별을 하는데.. 하나님 앞에는 높고 낮음이 없고 순서와 세력의 차별도 없다는 이 한마디가 내 교만한 가슴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돌아보면 나는 평생을 살며 얼마나 많은 차등을 두고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세상은 늘 남보다 앞서나가는 삶을 성공이라 부르고 뒤처지는 것을 은근히 두려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그 세속의 수치표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 문 앞에서도 슬그머니 내 마음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혹은 삶의 터전에서 봉사할 때 나는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은연중에 남들이 알아주는 자리를 바라지는 않았던가? 내가 흘린 땀방울과 걸어온 세월을 은근히 알아주기를 바라는 공로 의식이 내 안에 짙게 깔려 있지는 않았던가? 오늘 말씀 속 제사장들은 제비뽑기 항아리 앞에 섰습니다. 수가 두 배나 많았던 기득권 가문도 수가 적었던 가문도 자신의 세력이나 자질을 다투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 앞에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첫 번째 순서로 뽑힌 이나 가장 마지막 스물네 번째 순서로 뽑힌 이나 그 표정에는 차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몇 번째냐가 아니라, 내가 주님의 성전을 섬기는 거룩한 직분을 받았다는 그 사실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장자의 족장이나 그의 아우의 족장이 다름이 없더라 마지막의 이 구절은 신앙의 연륜이 깊다고 해서, 세상에서의 경험이 많다고 해서 은근히 대접받기를 원했던 우리의 모습을 부끄럽게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내 고집이나 파벌의 이익을 관철하는 명분이 아닙니다. 제비뽑기의 핵심은 제도의 형식이 아니라 내 사심을 내려 놓고 주님의 주권 앞에 복종하는 거룩한 질서에 있었습니다. 요즘 세상을 보면, 또한 우리의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많은 이들이 손해 보지 않고 편하게만 신앙생활을 하려 직분을 사양합니다. 그러면서도 내 자신에 맡겨진 직무는 제대로 감당하지 않은 채 남의 행동을 비방하고 평가 하는 데는 참 빠릅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내게 나지막이 물으십니다. 너는 남을 비판하기 전에 네게 맡겨진 직무의 자리를 신실하게 지키고 있느냐? 남을 도우려면 먼저 내게 맡겨진 일부터 잘 감당해야 합니다. 남을 비판하는 입술을 닫고, 내가 선 사명의 자리를 성실함으로 채울 때 비로소 공동체 안에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기 시작합니다. 누구나 세상의 무대 앞에 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인생의 수많은 파도를 지나오며, 몸에 남은 암 수술의 흔적과 가슴에 묻은 아픔들을 가만히 쓸어내려 봅니다. 그 모든 시련을 넘어 오늘 내가 숨 쉬며 주님을 묵상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내게 던져주신 은혜의 제비뽑기였습니다. 내가 잘나서.,,. 부름받은 것이 아닙니다. 순전히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 오늘 남을 향했던 손가락질을 거두고 내게 주신 작은 직무의 자리를 돌아봅니다. 남의 충성을 눈으로 쫓지 않게 하시고 내 손과 발이 머무는 사명의 자리에서 오직 주님의 뜻만을 앞세우는 충성된 일꾼이 되게 하소서. 스물네 번째 마지막 반열이면 어떻습니까? 아무도 보지 않는 구석이라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영광입니다.
00:00
임현호
우리는 오늘 역대상의 긴 족보와 이름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문득 마음이 멈춰 서는 구절을 만나게 됩니다. 아론의 자손들이 제비를 뽑아 성소의 직무를 나누는 장면이지요. 큰 자나 작은 자나, 스승이나 제자나 다름없이 평등하게 제비를 뽑아 자신의 자리를 맡았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우연처럼 보이는 조그만 나무 조각 하나에 하나님의 주권이 담겨 있었고, 그렇게 각자의 자리가 거룩하게 정해졌습니다. 인간적인 계산이나 서로를 향한 시기와 질투를 넘어서서, 오직 주님의 뜻에 겸손히 순종하는 아름다운 질서였습니다. 주어지는 삶의 자리 우리는 때로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너무 작거나 보잘것없게 느껴져 낙심하곤 합니다. 남들의 화려한 무대를 바라보며 왜 나에게는 저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불평하는 마음이 솟아나기도 하지요. 직장에서 맡은 작은 업무, 가정에서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가사 노동,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헌신의 순간들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제비뽑기를 통해 직무를 맡았던 성전의 문지기와 찬양대원들처럼, 지금 내가 있는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거룩한 제비의 결과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크고 작은 역할의 차이는 존재할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 가치의 차이는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느 청소부의 묵상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바닥을 쓸고 닦던 한 청소부의 이야기가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어느 날 정치가가 찾아와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습니다. 저는 단순한 청소부가 아니라, 인류를 달로 보내는 일을 돕고 있는 중입니다. 그는 자신의 작은 쓸어냄이 거대한 우주 탐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일상도 이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오늘 수행하는 작은 일 하나가 하나님의 거대한 뜻을 이루어가는 소중한 조각임을 깨달을 때, 우리의 일상은 비로소 거룩한 성전으로 변합니다. 맡겨진 자리에 뿌리내리기 그렇다면 우리는 매일의 삶속에서 어떻게 공정한 직무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첫째는 타인과 나의 자리를 비교하는 시선을 너그럽게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마음은 언제나 내게 주어진 오늘의 감사와 기쁨을 소리 없이 앗아갑니다. 둘째는 나에게 맡겨진 작은 영역 안에서 온전한 신실함을 다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리는 땀방울과 진실한 미소가 하나님의 나라를 조금씩 따뜻하게 넓혀갑니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의 시간과 역할이야말로 주님이 나를 위해 친히 뽑아주신 가장 복된 제비입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남과 비교하며 나의 자리를 원망했던 지친 마음을 너그럽게 고백합니다. 크고 작은 직무를 넘어 모두를 공평하게 쓰시는 주님의 깊은 지혜를 오늘 다시 바라봅니다. 내게 주어진 일상이 아무리 소박하고 작을지라도 그곳이 주님이 명하신 거룩한 자리임을 믿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나에게 맡겨진 작은 직무에 기쁜 마음으로 충성하게 하시고, 타인을 향한 시기와 경쟁심을 내려놓고 온전히 사랑하며 섬기게 하소서. 겸손한 순종의 걸음마다 주님의 은혜가 향기처럼 피어나기를 소망하오며, 우리 주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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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41 | 박상형 | 더욱 선명하고 풍성한 구원의 확신을 위하여 | pc |
| 00:56 | 유홍열 | 순서에 관계없이.. 스물네 번째라도 영광입니다 | pc |
| 00:00 | 임현호 | 우리는 오늘 역대상의 긴 족 | mobi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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