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언가를 결정할 때,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들을 때 결국 ‘내가’ 중심이 되어 판단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적용하기>에 쓰여있는 것처럼, 내가 보고 듣고 싶은 것에 결국 마음이 끌리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매일의 삶 속에서 내가 결정해야 할 것들이 참 많다. 크게는 ‘진로’부터, 작고 소소한 일상의 요소들까지. 이것에 대해 내가 어떻게 답을 할 것인지, 말을 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 등 다양한 영역들에서 나의 결정과 판단이 필요하다.
내가 답을 정해놓고 하나님께 묻는 경우도 참 많다. 하지만 저번 제자훈련 때 배웠던 것처럼,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장’의 상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그분은 참 기뻐하셨다.
2) 생명의 삶 묵상 에세이를 읽고 여러 생각이 든다. 나는 맨날 양보하고 배려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이, 한빛이는 욕심이 별로 없는 아이라고, 맨날 양보만 한다고, 너도 이제 좀 네 주장 좀 하라고, 그런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모습을 보니, 나도 만만치 않게 욕심이 많고, 따지는 게 많은 사람이었다. 겉으로 표현하지만 못했을 뿐 속으로는 욕심을 정말 많이 부리고 있던 사람이다. 어떤 것을 내가 쟁취하기 위해 남들이 모르게 노력하고,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어쩌면 내 만족감을 위해 힘썼던 일들도 많다.
그런 나에게, 내 것을 버리고 ‘이타적인 선택’을 하기엔 참 어렵다. 어느 정도 내 유익이 있고, 그런 후에 공동체에도 유익이 되면 참 좋을 텐데, 한 공동체 안에서 나를 좀 더 알아줬으면 좋겠고 내가 더 만족스러웠으면 좋겠다. 근데 예수님의 삶은 정반대이셨다는 걸 너무나 잘 안다..
지난 주일 2부 예배 때 박한수 담임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하며, 자유와 인권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저기에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안 된다. 봉사, 목회마저도 ‘자기 성취’에 만족하여 하면 안 된다. 하기 싫은 일을 하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라.”
내가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중 어떤 걸 할까? 라며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던 나에게 저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신 답이 되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비전의 길이 조금 더 뚜렷해졌고, 그 뚜렷해진 비전조차 내가 원해서 하는, 일명 ‘자기 성취’의 만족감을 얻는 수단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르호보암은 자기에게 만족스러운 답변에 귀를 기울였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굉장히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자기의 만족과 유익을 조금 내려놓고 이타적인 판단을 했다면 당시 이스라엘의 역사는 또 어떻게 바뀌어져있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그래도 참 궁금하다.
오늘 내가 르호보암이 될지, 하나님의 길을 따른 다윗이 될 것인지는 날마다의 선택에 달려 있는 듯하다. 내가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많고, 내가 자신 있는 것도 많고, 이제껏 양보했으니 이것만큼은 내가 꼭 이루고 싶은 것도 많다. 하지만 그 속에서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날마다 묻고 순종하는 삶을 살기 원한다.
.
P (기도):
하나님,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내가 답을 정해놓고 하나님께 묻는 것이 아닌, 백지장의 상태로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전이 되는 가장 이상적인 역사가 제 삶에 있길 원합니다. 사명을 가진 자로서, ‘어제까지만’이 아닌 ‘오늘, 매일, 지금’ 하나님께 묻고 따르는 자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 또한 제가 나의 이익보다 공동체를 더욱 생각하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지난 날 이 정도 했으니 이제는 내 것을 누려도 괜찮다는 세상적인 논리를 따르는 것이 아닌, 희생과 사랑과 섬김의 길을 걸으셨던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도록 제 마음을 만져주소서.
이 땅의 것에 연연하거나 집착하지 않게 하시고, 더 높은 곳을 향한 사명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더욱 좋은 주의 군사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